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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경험/독서

[독서] 방금 떠나온 세계 -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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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를 따지자면 뭐랄까... 판타지소설? 실제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 하지만 전혀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 작가의 상상력에서만 창조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담긴 단편 소설들 중에서 지구가 멸망한 뒤의 내용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꽤 흥미롭게 봤다. 작가가 평소 지구를 벗어난 상상을 많이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로몬, 모그 등 소설 속 인물들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이 참 풍부하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편소설의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1. 최후의 라이오니
2. 마리의 춤
3. 로라
4. 숨그림자
5. 오래된 협약
6. 인지 공간
7. 캐빈 방정식

대부분의 단편소설집들은 단편소설의 대표격이 되는 소설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짓는 경우가 많은데 방금 지나온 세계는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소설 속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책의 제목 ‘방금 떠나온 세계’는 단편 ‘인지 공간’ 속 마지막 대목의 문장을 따 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딘가 떠날 준비를 하거나 남겨져 있죠. 떠나온 사람과 남겨진 사람, 그 세계를 떠나오면서도 잊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을 포괄하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다. (출처 : 경향신문)

줄거리


1. 최후의 라이오니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던 편. 작중 기계라고 묘사된 셀과 주인공 로몬의 대화 속에서 뭔지 모를 애틋함이 느껴졌다. 주인공 로몬을 자신의 최후의 주인이었던 라이오니라고 생각하는 셀과, 자신은 라이오니가 아니지만 결국 자신의 본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주인공 로몬.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혹시라도 나중에 기계나 로봇이 인간과 상호작용하게 된다면 그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잠깐 생각이 들었던 에피소드.

2. 마리의 춤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모그'라는 사람들. 이들은 그들만이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이용하여 대화를 한다. 그들의 중심인 마리는 주인공에게 춤을 배워 공연을 하려고 하는데... 가끔은 그들만의 플랫폼에 주인공을 초대하려고 하기도 한다. 모그들과 마리들은 공연날짜에 공연에 온 모든 사람을 모그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꾸민다.

3. 로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고유수용감각의 이상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새로운 신체부위가 있다고 느끼는 것을 "잘못된 지도"를 가졌다고 한다. 화자인 진의 애인 로라는 스스로에게 제3의 팔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며 결국 3번째 팔인 인공 팔을 붙인다. 스스로가 느끼는 것과 실제와의 괴리에서 오는 답답한 심리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 만약 나도 새로운 신체기관이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실제로 (없기 때문에) 찾을 수 없다면 평생을 답답함 속에 살아갈 것 같았다.

4. 숨그림자

후각을 이용해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모인 행성. 이 부분에서 작가의 창의력에 또 한 번 놀랐다. 내가 너무 상상력이 없나....ㅋㅋㅋ 향기를 조합해서 의미를 담아 의사소통을 하는 게 신기했다. 실제로 현실에선 향수를 만들때 향을 조합해 특정한 향을 만드는데, 이 향마다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또 한편으로는 꽃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꽃마다 각각의 향이 있고, 꽃이 가지는 꽃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 할 때 그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선물하기도 하니, 이런 생각들이 오버랩 되면서 향의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느껴져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5. 오래된 협약

벨라타 행성에서는 신경독성물질이 대기 중에 떠다녀, 거기 사는 종족은 모두들 몰입이라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는 신경독성물질인 루타닐에 의한 것인데, 루타닐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오브'라는 생명체의 사체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 행성의 주민들은 오브를 먹는 것글 금기시하며 그것이 벨라타 신앙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는 오래전 맺어졌던 협약 때문이다. 벨라타는 오브가 지배하던 행성이었고, 현재 벨라타인이 들어왔을 때 오브들이 자신들의 행성을 조금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6. 인지공간

적정 나이를 먹으면 온 세계의 지식이 들어있는 인지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약하면 제한을 받는다. 주인공 제나는 인지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제나의 친구인 이브는 몸이 약해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인지공간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브만이 볼 수 있었던 진실(달이 사실은 세 개다!)이 있었고, 또한 이브는 개별인지공간인 스피어를 만드려고 했다. 이브가 죽고난 뒤, 제나는 이브의 뒤를 이어 스피어연구를 진행한다. 인지공간은 공동지식의 창고인 셈인데, 나는 인지공간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보면 세뇌당한 것과 동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그러하다라고 하는 진실이 사실은 그 뒤에 무언가 숨겨져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캐빈방정식

세상에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국지적 시간거품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설정. 캐빈(나는 관람차로 형상화했다)에 관한 이상한 소문들이 돌아다니는데 알고보니 실제로 그곳에 국지적 시간거품이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에 그런 소문들이 들려온 것이었다. 이 책의 내용보다 괜히 작가님에 대해 더 궁금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 나도 천성 이과이기 때문에 소설의 부분부분 보이는 이과스러움에서 작가님이 이과이실 거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포스텍 화학과를 나오셨다고 한다. 이런거 보면 작가님은 문이과적 지성을 고루 겸비하신 분 같다....ㅋㅋㅋㅋ




나는 단편 모음집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을 어쩌다 접해 읽게 되었다. 생각보다 엄청 빨리 읽혔다. 단편모음집은 큰 줄거리를 계속 기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생각없이 가볍게 읽기에도 좋지만 이 책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각 에피소드마다 생각할거리는 굉장히 풍부한 책이다. 실제로 난 상상력이 없는 편이지만 이 책의 SF스러운 부분을 보며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이라는 상상을 했을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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