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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경험/경험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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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게 된 사람들은 지금 3~4학년이라 취업을 해야할지, 아니면 대학원을 진학할 지 고민하는 사람들이겠네. 또는 이미 사회에 진출했다가 더 공부를 하러 돌아오신 분들일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내가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 갈래 길을 앞에 두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했는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얘기해볼게. 지금은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석사 2년차라 대학원을 고민하고 입학한지는 한 2년 정도 되었는데, 문득 '대학원을 내가 왜 왔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 글을 적어. 그냥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대학원 갔는데도 적당히 잘 살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거 같아.

 

출처 : Unsplash 의 Babak Habibi


사실 나는 4학년 8월까지만 해도 완전 취업파였어. 화학계열 전공이였지만 그 당시 반도체가 엄청 뜰 시기고, 전자전기 화학 기계 할 것 없이 누구나 반도체를 준비하던 시기여서 삼성, SK하이닉스를 가기 위해 인적성 검사인 GSAT, SKCT 등 준비를 열심히 했지. 방학 때는 외부에서 주최하는 교육도 듣고 수료증도 발급 받고, 자소서를 쓰기 위해서 경험 정리도 하고... 취준할 때 할 수 있는 것들 열심히 했어.

 

보통 취준러들은 하반기 채용을 진행하는 4학년 2학기 때부터 지원할 수 있는데 8월 말부터 공고가 뜨기 시작해. 나는 화학계열이니까 따로 공부한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화학계열 회사 공고를 봤어. LG화학, GS칼텍스, 한화케미칼,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금호석유화학 등등 회사는 참 많았단 말이지. 그런데 여기서 내가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정한 첫 번째 이유가 생겨. 바로 근무지야. 화학관련 회사들은 대부분 여수, 울산처럼 굉장히 남부지역에 있거나 대산처럼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해 있더라고. 나는 평생을 수도권에서 자라왔는데, 갑자기 삶의 터전을 다른 곳에 잡아야하는게  너무 싫은거야. 그냥 수도권의 인프라에 적응되어 있어서 수도권을 벗어나기가 싫었어. 그나마 연구직으로 입사하게 된다면 수도권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지고, 또는 연구단지가 큰 대전에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원을 진학해서 연구직에 지원해 수도권 or 대전에서 근무하자!는게 첫 번째 이유였어.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학원을 진학하면 학사로는 지원하기 어려운 연구개발직(R&D)에 지원할 수 있어. 이 연구직이라는 거 자체가 내가 대학원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야. 뭐 다들 뭔가 편한데서 일하고 싶지 몸이 힘들고 싶진 않잖아. 내 학부 때의 짧은 생각에는 공장(설비 라인을 말하는거)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연구소에서 생활하고 싶었어. 뭔가 공장을 가면 직군 특성상 교대도 많이 해야할 것 같고, 이리저리 몸을 굴려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드는거야. 물론 그렇지 않고 편한 곳도 있고 연구소지만 몸이 고된 곳도 있겠지. 그래도 내가 판단한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연구소가 좀 더 몸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기업 공고문을 보면 알게 될 건데 대부분 연구개발(R&D) 직군은 지원 자격에 '석사 이상'이 적혀있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나는 연구직에 지원하기 위해 최소 석사는 따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왔어. 이게 내 두 번째 이유야.

 

출처 : Unsplash 의 RephiLe water


세 번째 이유는 연구가 뭔지 경험해보기 위해서야. 사실 학부 때 경험으로는 학부연구생이라는 걸 해보지 않는 이상 연구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연구와 맞는지 알 수가 없어. 석사 학위가 있으면 그래도 연구가 뭔지 정도는 찍먹해봤다! 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연구를 해봤다고 말하려면 최소 석사는 있어야 해. 그래서 연구개발직에도 석사 이상 우대 같은 항목이 있는 거고. 만약 내가 연구를 경험해보지 않고 바로 취업을 하면 연구를 해보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학위과정을 해야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귀찮고 2~3배로 힘이 들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일단 연구를 경험해보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

네 번째 이유는 좀 계산적이고 시간효율적인 측면에 있고 제일 확신을 줬던 판단인데... 일단 나는 2년 정도는 연구가 뭔지 경험하기 위해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간이라고 판단했어. 솔직하게 말해서 취업도 어렵고 취준도 최소 1년은 잡는 요즘 시대에 1년 취준하고 취직하는 것보다는 2년 대학원 다니면서 연구를 경험해보고, 스펙도 쌓고 그러고 취직하는게 더 효율적이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단 말이지. 물론 석졸 하고 취업을 바로 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데 통계적으로 학사 졸보단 석사 졸이 취준 기간이 짧은 건 사실이니깐 말이야~. 좀 계산적이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뭐 2년 정도는 연구 경험을 위해 투자할만 하잖아!' 라는 마인드였지. 2년 했다가 연구가 내 적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 하면 그냥 바로 취업하면 되는거고, 연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하면 박사까지 할 수 있는거고. 그러다 보니 내 계산에는 석사는 하는게 맞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

 

출처 : Unsplash 의 Agê Barros

 



위에 네 가지 이유가 내가 대학원을 진학한 주요 이유들이야. 그 외에도 자잘한 이유들이 있어. 뭐 사회에 진출하기 전 사회와 학교의 사이 정도의 중간층 같은 역할로 작은 사회(대학원을 작은 사회 말하는 사람도 있더라고)를 경험하고 나가면 사회에 적응하기 더 나을 것 같은 느낌도 있었고, 공부는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남들보다 좀 더 뭔가를 잘하고 싶다라는 이유도 있었어. 그리고 대학원을 진학하는 사람들은 보통 학사로는 내가 아는 게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대학원을 가는 경우도 많아. 나도 이런 이유가 없지 않아 있었어. 근데 위의 4가지 이유보다는 비중이 적었을 뿐이지.

 


어때, 생각보다 대학원 진학 동기가 별거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 내가 막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겠다든지, 난 반드시 연구소에 들어가 평생 연구를 하고 살고싶어라든지, 세계적인 탑저널에 논문을 내야겠다든지 등의 거창한 이유는 없었어. 단지 수도권에 있고 싶고, 몸이 편하고 싶고, 연구 찍먹해보고 싶고,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하여 이성적으로 효율을 계산했을 때 2년 정도는 투자할만 하다 이거지.


어떤 사람들은 한 분야의 공부를 더 해보고 싶고 해서 진학하는 경우도 많아. 물론 내가 더 알아가고 싶은 분야를 연구하는 랩에 컨택을 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면 내가 원하는 연구는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예를 들어 나는 반도체 CMOS를 하러 왔는데 뭐 NAND flash memory를 하고 있고, 배터리 전해질을 연구하러 왔는데 다른 electronic wearable devices를 하는 경우도 있고 뭐 이런 경우가 엄청 많아. 커다란 분야는 비슷 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application이 다르다보니까 연구 방향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어. 보통 들어가면 지금 랩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사람이 부족한 쪽에 배치가 되다 보니까 교수 입장에서는 올해는 얘 뽑으면 어디쪽 연구 시켜야지, 얘는 저기쪽 연구 시켜야지 등등 생각하고 계획하시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만약 한 분야의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는 거라면 커다란 주제만 신경 써서 랩에 컨택하길 바라. 양극재면 양극재, 메모리면 메모리, 이온/전자전도성 고분자면 이온/전자전도성 고분자처럼 커다란 주제 하나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야 실제 내게 업무가 주어졌을 때 스트레스를 덜받아. 난 세부적으로 이거하고 싶어서 대학원 갔는데...? 라고 생각하면 금방 지칠 확률이 높은 것 같아. 뭐 아무튼 그냥 이건 내 경험과 주변 대학원생들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야. 그리고 어차피 한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분야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되고, 완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분야도 봐야만이 이 분야를 저기에 접목한다면? 과 같은 생각으로 좋은 논문을 쓸 수 있는 것 같아.

 



좀 글이 길긴 한데 쉽게 읽혔음 좋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4학년 9월에 급하게 대학원을 컨택해서 쉬는 기간 없이 바로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어. '이런 별거 아닌 생각을 가진 사람도 대학원에 진학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감을 가져도 돼. 그리고 취업이 안되어서 대학원 오는 걸 비추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추천이야. 당연히 학사보단 취업이 잘될거고, 취준하는 시간에 뭘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대학원 와서 연구도 해보면서 공부도 좀 더 해보고 나에 대해 자아성찰하는 시간도 갖는게 결과적으론 더 좋은 거 같아. 약간 뭔가 일은 하고 있지만 졸업유예 느낌인거지. 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본인한테는 그런 경험도 다 득이 될 거야. 특히 내가 위에 써놨듯이 딱 2년 정도는 할만한 것 같아.

이 글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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